이 싸움을 하는 시기는 음력으로 꼭 정월 보름날이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어느 도에나 소위 달맞이 놀이를 한다고 동네마다 제일 먼저 달구경하기 좋은 산 위의 망월봉(望月峯)에 올라가서 횃불을 준비하였다가 달이 솟아오르면 그 달을 향하여 그 횃불을 들고 절을 하며 복을 비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본문 중에서>
조선 사람이 진달래 대한 애착심은 결코 일본사람의 사쿠라에 대한 애착심에 못지않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하기 위한 예로부터 모든 사람 많은 시와 노래를 가지고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조선에서 진달래의 명소는 아마 영변(寧邊)의 약산동대(藥山東臺)로 제일 손꼽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통인정은 통의동에 새로 고친 이름이다. 통의정은 이전 매동(梅洞), 서문골(西門洞), 띠골(대동帶洞), 북장동의 일부를 합한 것으로 통의는 방(坊) 이름, 의통(義通)을 바꾸어 통의라고 하였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통(通)은 통동의 ‘통’과 그곳에 있는 어의궁(於義宮) 즉, 당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