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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의열투쟁의 선구자 전명운

의열투쟁의 선구자 전명운
  • 저자조철행
  • 출판사역사공간
  • 출판년2017-01-06
  • 공급사아카디피아 전자책 (2015-02-01)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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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독립운동은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무장투쟁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고, 의열투쟁은 앞장서 침략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인이나 친일파를 처단했던 독립운동의 방법이다. 순국과 의열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방략이 등장한 것은 1905년 일제가 강제로 맺은 을사늑약 때문이었다. 민영환·조병세·홍만식 등의 순국열사들은 을사늑약을 규탄하면서 자결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항일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한국민에게 애국심과 국가정신을 고취시키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순국열사들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독립운동방략은 일제와 친일파를 처단하는 의열투쟁이었다. 의열투쟁은 한국의 무력적 식민지화를 추진한 일본정치인·군인·친일주구 등과 주요 식민기관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평화적인 수단이 더 이상 효용을 가질 수 없게 된 조건에서 출현한 적극적인 대응책 중 하나였다. 의열투쟁의 시초가 된 것은 전명운과 장인환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을 들 수 있다. 일제의 앞잡이 스티븐스는 친일정책 수행과 함께 계속적인 망언을 하였다. 이에 평화적 정정요구를 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리하여 전명운과 장인환 두 의사는 스티븐스 처단을 결심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민족적인 울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만천하에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기희생’을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기를 강하게 희망한 것이다. 이 의거는 이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강우규의 사이토 마코토 척살의거, 의열단의 일련의 의거, 윤봉길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 이봉창의 도쿄 일왕 폭살 의거 등의 의열투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명운·장인환 두 의사는 의열투쟁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러한 의열투쟁 정신은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도 계승·발현되어 친일파와 매국노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자주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은 미주는 물론 국외 한인사회 독립운동을 견인하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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